REAL
별로 재밌는 이야기도 아니고 길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지만 조금은 눈감아주었으면 한다.
그럼 쓴다.
무언가에게 홀리거나 노려지거나 달라붙어진다면, 진짜 두려운 것을 첫머리에 말해 둔다.
하나 더, 내 경험으로부터 말하자면 한두 번 액막이를 한다고 해서 어떻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우선 없다.
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좀먹어가니까 말이지. 액막이가 먹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거 같아.
내 경우는 대체로 2년 반 정도.
일단 미리 말해 두건데, 사지 멀쩡하고 보통 사람처럼 생활할 수 있다.
단, 안타깝지만 끝난 건지 어떤지는 확실하지 않다.
우선 처음부터 말하자면
당시 나는 23살 사회인 1년차였고, 새로운 생활을 보내는 데 최선을 다하던 시절이었지.
회사가 작았으므로 당연히 동기도 적고, 필연적으로 사이가 좋아졌다.
그 동기 중에 도호쿠 지방 출신인 ○○라는 녀석이 있는데,
이 녀석이 또 별걸 다 알고 있거나, 엄청 마당발이었던 거지.
그래서 자주『이걸 하면 ××가 된다』거나, 『△△가 온다』거나 하는 이야기 있잖아?
그런 계열의 이야기는 거의 뻥이라고 생각하지만,
몇 개는 진짜 그렇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도 있다는 것이다.
걔가 말하길 뭔가 조건이 몇 개 있어서 우연히 갖추어지면 일어난다는 게 아닌가 한다고.
나 때는 뭐, 웃기지도 않는 장난이 원인이었겠지.
당시는 차를 막 샀을 때였고, 자취를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알바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월급이 들어오니까 주말은 노는 데 정신이 팔렸었다.
8월 초에 헌팅해서 친해진 애들이랑 ○○, 그리고 나까지 4명이서
소위 심령스팟이라는 장소에서 담력시험을 하러 간 거야.
거기선 확실히 무서웠고, 한기도 느꼈고, 뭔가 있는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는데
딱히 아무 일도 없어서, 그냥 스릴을 즐기고 돌아왔어.
3일 후였다.
그 당시 회사는 상사가 퇴근할 때까지 신입사원은 퇴근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어서 매일 늦게 퇴근했어.
지쳐서 집에 돌아오니 진짜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지만
방 입구에 있는 전신거울 앞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거야.
시험해본다거나 했던 건 아니고 문득 생각나서였던 것 같아.
좀 자세한 설명을 할게.
당시 내 방은 역에서 도보로 15분, 다다미 8장 원룸,
현관으로 들어가면 좁은 복도가 있고 그 앞에 다다미 8장 정도의 방이 있어.
전신거울은 방 입구, 다시 말해 복도와 방 경계에 두고 있었다.
내가 ○○로부터 들은 것은 『거울 앞에서 △를 한 채로 오른쪽을 보면 ◆가 온다』는 이야기였다.
자세는 인사하는 것 같은 모습이 된다.
「올 리가 없지」라고 중얼거리며 인사한 채로 오른쪽을 본 때였다.
방 한 가운데쯤에 뭔가가 있었다. 겉모습은 확연히 이상했다.
아마 160cm정도였다고 생각한다. 머리는 허리까지 오는데 부스스했고 얼굴에 발(簾)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것보다도, 얼굴엔 부적 같은 것이 몇 장이고 붙어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하얀 옷을 입고, 작은 폭으로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굳어있었다.
소리도 안 나오고, 몸은 일체 움직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엄청 머릴 굴리며 벌어진 일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상상해줬으면 좋겠다.
좁은 원룸에 소리도 없이 방 한가운데쯤에 뭔가 있다는 상황을.
머릿속에서는 이유는 뻔히 알고 있는데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혼란이 소용돌이쳤다.
어찌됐건 이상하다? 불을 켜놨는데 오히려 그게 무서운 거야. 갑자기 튀어나온 그 녀석이 보이니까.
그 녀석 주위만 푸른빛이 감도는 게 보였어.
시간이 멈췄다고 착각할 정도로 조용했다.
우선 내가 내린 결론은 『방에서 나가자』였다.
발치에 있는 신발을 어째선지 천천히 신중하게 들어올렸다.
그 녀석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눈을 떼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걸음질 치면서 복도를 반(보통걸음으로 3걸음 정도인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정도 넘었을 쯤
그 녀석이 몸을 좌우로 흔드는 폭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뭔가 두드리는 듯 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후의 일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역 앞 편의점에 들어와 있었다.
어쨌건 사람이 있는 편의점에 와서 안심했다.
다만 머릿속은 아직도 혼란스러워서
『뭐야 그거』하며 분노 같은 감정과 『문 잠그는 거 잊었다』는 것처럼 이상한 것에만 냉정한 자신이 있었다.
결국 그 날은 방에 돌아올 용기도 없어서 밤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침까지 기다렸다.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할 쯤, 조심조심 방문을 열었다. 다행이다. 사라져 있었다.
방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밖에 나와서 캔 커피를 마시면서 한숨 돌렸다.
사실은 아무것도 없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진짜 그런 게 있을 수도 없고 말이지.
밝아졌다는 것과 이제 없다는 것으로 좀 여유가 생긴 거였겠지.
아까보다는 조금 대담하게 방에 들어갔다.
『좋아, 없다』같은 생각을 하며 커튼이 쳐져서 어스레한 방에 불을 켰다.
어젯밤 일을 뒷받침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그 녀석이 있었던 곳 바닥에 엄청 역한 냄새가 나는 진흙(강바닥에 있는 침전물 같은 것이라 생각)이
그것도 발자국이란 레벨을 넘어선 양이 남아있었다.
일어난 일이 사실이라 재확인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퍼뜩 생각나서 더더욱 패닉상태가 되었지만…, 나 불 끈 적 없다… 하하…
스위치를 누른 왼손을 보니, 이쪽에서 진흙이 묻어있는 것이다.
한참동안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지만, 나와 버린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뭐 이게 내가 AB형인 전형적인 부분이지만
그런 상태로도 진흙을 닦고 샤워하고 출근했다.
냄새가 지워지지 않아서 꽤 짜증났고, 나름대로 큰 문제였지만
회사를 쉬는 것도 큰일이었으니까.
회사에 도착하니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와 이야기 할 시간을 찾았다.
일의 발단과 관계있는 ○○니까 어떻게든 정보를 얻으려고 했던 거다.
점심시간에야 간신히 이야기 할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아래는 나와 ○○의 대화 내용.
「저기 요전에 말했던 『△하면 ◆가 온다』던가 하는 이야기 있잖아. 어제 그거 해봤는데 왔거든」
「뭐? 뭐야 그게?」
「그러니까, 진짜로 뭐가 나왔다고!」
「아~ 그래그래. 쿠퍼액이 나왔구나」
「너 이새ㄲ…농담하지 마. 위험한 게 나왔다고」
「뭔 소린지 모르겠다고!」
「나도 모르겠어!!」
안되겠다. 끝이 없겠다.
○○가 믿게 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담담하게 어제 일을 설명했다.
처음엔 뻥이라고 생각했던 ○○도 겨우 반신반의 상태가 되었다.
일이 끝나고 내 방에 와서 확인하기도 했다.
밤 10시, 다행히도 빨리 퇴근할 수 있었던 ○○와 나는 방에 도착했다.
문을 연 순간 오늘 아침에 났던 악취가 코를 찔렀다.
닫아두었던 방에서 열기와 함께 분명히 악취가 덮쳐 왔다.
돌아가는 길에도 내게 끈질길 정도인 설명을 듣던 ○○는
「……진짜?」하고 한 마디 중얼거렸다. 믿는 것 같았다.
문제는 ○○가 무언가 해결책을 가지고 있느냐 마느냐였지만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일단 액막이를 하러 가는 게 좋겠다는 것과 지인에게 물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녀석은 도망가듯 돌아갔다.
예상대로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지만 녀석의 넓은 발에 기대해봤다.
역겨운 곳에서 있고 싶지 않아서 그 날은 캡슐호텔에서 묵었다.
오늘 밤도 나오면 끝장이라고 생각한 게 본심.
다음 날 곧바로 근처 절에 갔다. 역시 회사 갈 겨를도 없었다.
스님께 이유를 설명하니
「전문이 아니라 잘 모르겠네요~ 잠시 휴식을 취하시면 어떨까요. 분명 착각일 거예요」
따위의 태평한 말이 돌아왔다. 세상이 이렇지 뭐.
그 날은 시내의 유명한 절이나 신사를 몇 곳이고 둘러봤지만 다른 곳도 별 다를 건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사이타마에 있는 본가를 찾았다.
정확하게는 외할머니가 신세를 지고 있는 S선생님이란 비구니와 상담하고 싶었다.
그렇다기보다, 그 사람 외에 제대로 상대해 줄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여기서 S선생님이란 사람을 소개한다.
어머니는 나가사키현 출신으로 당연히 외할머니도 나가사키에 계신다.
외할머니는 전쟁을 경험한 후로 신실한 불교신자다.
S선생님은 그런 외할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 다니는 자택 겸 절의 주지스님이시다.
나도 몇 번인가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잘 모르지만 종파의 이름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였으니 사이비 영능력자 따위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착실히 부처님을 모셔온 분이다.
인품이 온후하고 차분하고 상냥한 말투였다.
내가 중학생이 될 쯤 아버지가 땅을 사서 집을 세우게 되었다.
지진제 라고도 하지? 어쨌든 그 땅에 액막이를 했다.
그 일주일 후에 나가사키에 계신 외할머니로부터
「땅이 안 좋으니 S선생님이 액막이를 하시러 간다」는 내용의 전화가 있었다.
당연히 어머니로서도 「벌써 다 했는데 왜?」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외할머니는「하지만 S선생님이 아직 남아있다고 하셨다」고.
즉 내가 아는 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 S선생님이었다.
날도 어두워져서 사이타마 본가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 조금 전이었다.
시내와 다르게 공장만 있는 마을이라 밤 9시만 되도 사람이 없다.
버스정류장에서 본가까지 약 20분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인기척도 없는 어두운 길에 가로등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다.
내심 엊그제 일이 다시 떠올라 꽤 무서웠지만 다행히도 그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밤이 되어 시원해져서인지 나는 내 몸에 변화를 눈치 챘다.
아무래도 목 부근이 뜨겁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예를 들자면 목에 끈을 두르고 좌우로 비비는 것 같은 느낌이다.
목에 손을 댔는데 오싹했다. 뜨겁다. 목만 뜨겁다. 게다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발진같은 게 생긴 것 같다.
걷고있을 수가 없어서 본가까지 전력을 다해 뛰어갔다.
숨을 헐떡이며 본가 현관을 열자 어머니가 막 전화를 끊는 참이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아, 너 나가사키 외할머니가 전화해서 걱정이래.
S선생님이 너한테 안 좋은 일이 생겼으니까 이쪽으로 오라고 했대. 너 무슨 일 했니?
어머나, 너 목 주변이 왜 그래!!?」
대답하기 전에 현관 거울을 봤다. 그 녀석이 온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목 주변은 밧줄이라도 묶인 것처럼 완벽한 붉은 선이 생겨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작은 발진이 빽빽이 올라와 있었다.
역시 몸이 가늘게 떨려왔다.
아무 생각도 없이, 어머니께도 한 마디 대답도 없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
어머니 방에 있는 작은 불상 앞에서 나무아미타불을 반복했다.
그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걱정하며「어떻게 된 거냐!!」고 호통 치며 달려왔다.
어머니는 이상하다는 걸 알아채고 외할머니께 전화를 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는 소리다.
도망칠 곳은 없다고, 무서운 일이 되어버렸다고, 그제야 겨우 이해했다….
본가로 돌아와서 자신이 놓인 상황을 이해하고 3일이 지났다.
정신적으로는 지쳐서인지, 그것이 뭔가 그 녀석이 일으킨 것인지는 몰랐지만,
이틀간 고열에 시달렸다.
목에서 이상할 정도로 땀이 나고 이틀 째 점심에는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3일 째 아침에는 목에서 피는 멈췄다. 뭐 원래 배어나오는 정도였으니까.
열도 미열정도로 떨어지고 조금은 침착해졌다.
단 목 부근에 이상한 가려움이 느껴졌다.
따끔따끔 아프고 가렵다. 베개나 이불, 수건 등에 닿으면 날카롭게 작은 아픔이 밀려왔다.
피가 났으니 딱지가 생겨 가려운건가 해서, 일부러 닿지 않도록 하려고 했다.
이불에 파묻혀 저녁까지 신경 쓰지 않도록 조심했지만, 화장실에 갔을 때 너무 신경 쓰여 거울을 봤다.
거울 따위 보고 싶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내게 일어나는 일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했다.
거울은 처음 보는 상황을 비추고 있었다.
목의 붉은 기는 완전히 줄어있었다. 그 대신 발진이 커져있었다.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 나쁘지만, 굳이 상세한 묘사를 해야겠다. 불쾌해하지 말아주길.
원래 목 주위에 선은 두께가 1cm정도였다.
그게 새빨개져서 원래는 꽤 하얀 편인 내 피부와 대비되어 제대로 빨간 줄이 감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3일 전.
눈앞의 거울이 비추는 그 부분에는 고름이 고여 있었다.
…아니, 정확하지 않군.
정확하게는 빨간 선을 만들고 있던 발진에는 고름이 고여 있어
마치 특대사이즈의 여드름이 북적대는 것 같았다.
그 대부분에 고름이 고여 있는 게 너무 무시무시해서 속이 안 좋아져서 그 자리에서 토했다.
깨끗한 물로 목을 씻고, 어머니께 연고를 빌려 바르고 울며 이불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단 하나, 『왜 나인 건데』하는 분노만 있었다.
울다 지쳤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로부터였다.
이런 때 정말 작으나마 희망이라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된다?
솔직히 이렇게 기쁜 착신음은 처음이었다.
「여보세요」
『여어~! 괜찮아~!?』
「아니… 괜찮을 리가 없잖아…」
『아ー 역시 위험해?』
「위험한 정도가 아냐. 휴우… 것보다 뭐 없어?」
『그게, 주변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말야, 좀 아는 녀석이 없어서… 미안해』
「아ー 그래서?」
솔직히 ○○나름대로 여러 가지 해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이때의 나는 상대를 배려해 줄 여유 따윈 없었으므로
꽤 자기중심적인 말투로 들렸을 거다.
『아니, 그 대신 친구 지인이 그런거에 강한 사람이 있어서 말야ー
소개해 줄 순 있는데 돈이 좀 든대…』
「!? 돈 받는거야?」
『응 그런것 같아… 어떡할래?』
「얼마나?」
『지인 말로는 일단 오십만 정도라는 것 같아…』
「오십만~!?」
그 당시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하고 있다고는 해도 50만이라니 낼 수 있을 리가 없는 금액이었다.
돈이 아까웠지만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해방 된다면…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알았어. 언제 소개 해 줄거야?」
『그 사람 지금 군마에 있다는 것 같아. 지인한테 물어볼 테니까 잠깐 기다려』
이야기 순서가 뒤바뀌었지만 내가 불상 앞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외울 때 어머니는 외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외할머니가 바로 S선생님께 상담하러 가서 (상담이라고 하기보다 도와주세요라는 부탁이었던 것 같지만)
최종적으로는 S선생님이 와 주시기로 돼 있었다.
다만, S선생님도 바쁘시고, 무엇보다 나이가 많으시다. 이쪽에 오시는 것은 3주 뒤로 결정되었다.
다시 말해, 3주간은 불안과 공포와 뭐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있어야한다.
그런 상황이니까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 두지 않으면, 기분이 안정되지 않았다.
○○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 것은 밤 11시를 넘었을 때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지인에게 상담했더니 연락 넣어 줘서 내일 갈 수 있대』
「내일?」
『봐, 내일 일요일이잖아?』
그렇군, 벌써 녀석을 본지 5일이나 지난 건가. 신기하게도 회사 일도 잊고 있었구나.
「알았어. 고마워. 우리 집까지 오는 거야?」
『집까지 갈게. 차로 가는 것 같으니까 주소 문자로 보내줘』
「넌 어떡할 거야? 와 주면 좋겠지만」
『가, 가』
「돈, 나중에라도 괜찮을까?」
『아마 괜찮겠지?』
「알았어. 근처까지 오면 전화해」
이 얼마나 순서가 잘못 된 이야기인지, 풋내기였던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밤, 꿈을 꿨다.
자는 내 옆에 하얀 소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정좌하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고개를 깊게 숙여 공손히 절하곤 방에서 나와 있었다.
방에서 나오기 전에 한 번 더 깊게 머리를 숙였다.
이 꿈이 그 녀석과 관계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날, 점심이 좀 지날 무렵 ○○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화로 길을 알려주며 마중을 나갔다.
도착한 것은 ○○와 그 친구, 그리고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보통 사람 같지는 않았지. 건달 같은 느낌도 있었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내가 미리 설명해두지 않아서 부모님이 미심쩍어하셨다.
처음에 틀림없이 가명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자는 하야시라고 이름을 밝혔다.
하야시「T군 이야기는 그에게 들었습죠. 뭐 좀 귀찮은 일이 됐네요.」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T는 나, 이야기 속에 그는 ○○라고 생각하고 읽어주길)
아버지「그래서 하야시씨는 어떻게 와 주신 건가요?」
하「어휴, 이건 뭐 초보면 어떻게 손도 못 대요.
아버님, 아시겠어요?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T군 위험하다고요?
그래서 그가 친구 T군이 위험하니까 도와달라고 해서 말이죠, 그래서 여기에 오게 됐다~ 뭐 그런거죠」
어머니「T는 위험한가요?」
하「어휴, 저도 이런 걸 꽤 많이 봤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건 처음이네요.
이 방 가득 안 좋은 기운이 충만합니다」
아「…죄송합니다만, 하야시씨의 직업을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하「아ー 신경 쓰이세요? 뭐 그건 갑자기 와서 이런 소릴 하면 의심스러우시겠죠.
근데 말이죠, 똑바로 제령해서 여기를 정화시키지 않으면 T군 진짜로 끌려가버립니다?」
어「저기, 하야시씨에게 부탁드릴 수 있는 건가요?」
하「그건 뭐 맡겨주시기만 한다면야. 이런 건 저같은 전문가가 아니면 안돼요.
근데요 어머님. 저로서도 위험이 있단 말이죠. 쬐끔은 넣어 주셔야 돼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아「얼마나 있으면 됩니까?」
하「그러네요~ 뭐 이백은 받아야…」
아「그렇게까지!?」
하「이것도 그가 친구 좀 도와달라니까 일부러 시간 내서 왔잖아요?
싫다고 하시면 저야 별 상관없지만 말이죠~
근데 고작 이백만으로 T군이 살 수 있다면 싸다고 생각되는데요」
하「게다가 T군 절에서도 상대도 안 해줬잖아요?
이런 거 아는 사람은 요만큼도 안돼요. 또 다시 처음부터 찾으시려고요?」
난 조용히 듣고 있었다.
확실히 이백만이라는 소릴 들었을 때는 ○○를 봤지만, ○○도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도 어머니도 잘 모르는 것에 그 이상 의견을 낼 수도 없이, 마지못해 맡기기도 하였다.
하야시는 곧바로 오늘 밤 제령을 하겠다고 했다.
준비를 하겠다고 하고 한 번 외출했다. (외출하며 부모님께 준비에 드는 돈을 받아갔다)
저녁에 돌아와서 초를 세우고 부적 같은 종이를 방 전체에 붙인 뒤, 무릎 근처에 수정 구슬을 두고 염주를 들더니
일본주라고 생각되는데, 그걸 잔에 부었다. 어쩐지 그럴 듯 해졌다.
하「T군. 이제부터 액막이를 할 거다. 이걸로 다 괜찮아질 거야.
아버님, 어머님. 죄송하지만 일단 집에서 나가주시지 않겠어요?
어쩌면 영이 그쪽으로 갈지도 모르니까요」
부모님은 본의 아니게 밖에 있는 차에서 대기하게 되셨다.
날도 저물고 주변이 어두워졌을 즈음, 액막이가 시작되었다.
하야시는 경 같은 걸 외면서 일정한 타이밍에 잔에 손가락을 넣고 내게 그 물방을울 튕겼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이불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하야시가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액막이가 시작하고 꽤 시간이 흘렀다.
경을 외는 소리가 띄엄띄엄 들리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 나쁜 분위기와 조금씩 이상해져가는 경만이 내가 알 수 있는 전부였다.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목이 이상하게 아프다. 가려움을 넘어서 명백하게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눈을 뜨면 안 돼서 아픔을 견디려고 이를 악 물고 있자니 경이 멈췄다.
하지만 이상했다.
잘 모르겠지만, 끝나는 부분이 좀 이상했고, 끝났다기엔 아무 말도 걸어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목의 아픔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해가기만 했다.
추위도 느껴지고 무언가가 이불 위에 걸쳐있는 느낌이 든다.
눈을 뜨면 안 된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
알고는 있지만… 눈을 떠 버렸다.
눈을 뜨자 무서운 광경이 들어왔다.
하야시는 이불에서 누워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액막이를 하고 있었다.
하야시를 마주보듯 나를 끼고 그 녀석이 정좌하고 있었다.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고 상반신만 뻗어 하야시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하야시의 얼굴과 그 녀석의 얼굴 사이에는 주먹 하나 정도의 공간 밖에 남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얼굴을 비스듬히 하고 올빼미처럼 조금씩 고개를 움직이면서
알아들을 수 없지만 작게 중얼거리면서 하야시 얼굴을 들여다봤다.
지금 생각하니 하야시에게 뭐라고 속삭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야시는 좀 고개를 숙이고 눈을 아래로 깐 채로 꿈쩍도 안하고,
입은 칠칠맞게 벌린 채로 침을 흘리고 있었다.
표정이 조금 웃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작게 끄덕이기도 했다.
나는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잊고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 녀석의 목이 움직임을 멈췄다. 다음 순간 얼굴은 내게 향했다.
난 당황해서 눈을 꼭 감고 이불을 덮어쓰고 오직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내 얼굴 바로 옆에 그 녀석이 올빼미처럼 얼굴을 움직이고 있을 광경이 상상되었다. 두려웠다.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야시가 도망치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나도 무서워서 이불속에 계속 파묻혀 있었다.
부모님이 와서 불을 키고 이불을 걷어냈을 때, 몸을 둥글게 만 채로 굳어진 내가 있었다고 한다.
하야시는 부모님을 보지도 않고 차에 올라타서 기다리고 있던 ○○, ○○의 친구와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중에 ○○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차 출발해」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더 큰일이 되 버린 내게는
3주 후 오시는 S선생님을 기다릴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 녀석을 다시 본 뒤로 또 4일이 지났다.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목은 많이 좋아졌고, 아직 흉터가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체력은 회복되고 있었다.
열도 내리고 몸은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건 신체적인 이야기일 뿐, 낮이나 밤이나 상관없이 겁먹어 벌벌 떨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그 녀석이 모습을 나타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계속되고, 식사도 거의 하지 못하고 항상 주변의 기척을 신경 쓰고 있었다.
열흘도 지나지 않아 내 얼굴은 상당히 변했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렸던 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당연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리도 없어, 부모님이 연락해서 회사를 그만뒀다.
(이것도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연락 했을 때는 무척 기분 나쁜 말을 들었다고 한다)
어쨌건 모든 것이 무서워서 빨래나 집 창문으로 보이는 감나무가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그 녀석이 아닐까 하고 혼자 떨고 있었다.
S선생님이 오기까지는 아직 2주정도 남아있었다. 나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보다 못한 부모님은 겁먹은 나를 억지로 차에 밀어넣고 어딘가로 향했다.
아버지가 몇 번이고 「걱정하지마」「괜찮다」고 말을 걸어주셨다.
차 뒷좌석에서 어머니는 내 어깨를 감싸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다니 몇 년만이었을까.
당시 내게는 시간 감각도 없어서 차로 이동하면서 밤을 맞았다.
스무살도 넘어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어머니께 기대있어 안심한 건지 오랜만에 깊게 잠들었다.
눈을 뜨자 이미 해가 떠 있었다. 오랜만에 잠들어서 상쾌했다.
실제로는 거의 하루 반정도 잠들었다고 한다. 아마 그렇게 오래 잠드는 일은 이제 없겠지.
밖을 보니 차는 낯선 곳을 달리고 있었다.
조금씩 익숙한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햇다. 도로 가운데 전차가 달리고있다.
차는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이건 나도 역시 좀 놀랐다.
겁내고 있는 나를 생각해서 비행기나 신칸센을 피해 차로 이동해 주신것 같았다.
중간에 몇 번 쉬었다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제대로 잠도 못자고 계속 운전하신 아버지와
내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계속 안고계셨던 어머니의 은혜는
평생동안 갚아도 다 갚을 수 없을 것 같다
조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나가사키의 야나가와라고 한다.
야나가와에 도착하자 비탈길 밑에 차를 대고, 부모님이 조부모님을 부르러 가셨다.
(조부모님 집은 비탈길에서 옆으로 들어가 돌계단을 올라간 곳에 있다)
그동안 나는 차 안에서 혼자가 되었다.
부모님이 둘이 나가신 것은
몸이 안 좋으신 할머니나, S선생님 집에 가져갈 짐을 옮기기 위함이었으나
스스로 「괜찮아, 다녀와」같은 소릴 한 것은 정말 얕봤던 증거였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잠든 것이나 지금 있는 장소가 도쿄, 사이타마와 많이 떨어진 나가사키였다는 점이
방심하게 만든 걸지도 모르겠다.
차 뒷좌석에서 다리를 끌어안고 앉아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목에 고통이 밀려왔다.
지금까지의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격한 통증이 일어났다
목에 손을 대 보니 미끄러졌다. …피가 나고 있었다.
손가락에 묻은 피가 좋든 싫든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
그 때, 무섭다거나 그 녀석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또냐…」하는 포기해버리고 싶은 기분이 먼저 들었지.
이젠 다 싫어져서 울음이 나왔다.
이해해준다면 기쁜데,
싫은 일이 잠깐 텀을 두고 계속해서 일어나면 진짜 어떻게 하지도 못할 만큼 침울해지잖아.
좀 기분이 정리될 만하면 싫은 일이 또 일어난다는 건 괴롭지.
이때는 좀 마음을 놓고 있어서 더 그랬고,
「어쩌란 거야!!」라거나 「작작 좀 하라고」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울고 있었다.
부모님이 조부모님을 모시고 차로 돌아왔지만, 바로 충격을 받았다.
어쨌든 문제의 내가 목에서 피를 흘리면서 뒷좌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으니까.
가만 계실 리가 없지.
「어떻게 된 거야?」 「말 좀 해봐!」 「진짜 싫다」 「T, 정신 못 차릴래!!」
「우엔 일이고!?」 「니 어쩐기가」같은 말들을 쏟아내셨다.
이때는 나도 모르게「너희들 좀 닥치라고!!」라고 소리쳐 버렸다.
이럴 때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너희들은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조용히 좀 해! 같은 생각을 했다.
지 혼자 안 좋은 일을 당해서 일은 그만두지, 사기는 당할 뻔하지…
이렇게 나처럼 글러먹은 녀석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녀주신 분들인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다.
그래서 인생에서 딱 한번뿐이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내 왼뺨을 때리셨다.
엄청나게 아팠지. 아버지는 엄청 엄격하셔서 몇 번이고 말싸움은 했지만
아마 태어나서 한 번도 맞아 본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빠의 교육 방침이 아이는 절대로 때리지 않는다는 것이란 소리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리고 딱 한 마디「할아버지, 할머니께 사과해라」라고 조용하지만 엄한 말투로 이야기 하셨다.
덕분에 어쩐지 침착해졌다. 그렇다기보다도 너무 놀라서 그때까지 느낀 절망감이 어딘가로 달아나 버렸다.
냉정함을 되찾고 모두에게 사과했더니, 갑자기 각오가 단단히 선 기분이 들었다.
달리기 시작한 자동차 안에서 격려해주는 조부모님의 말에 너무 감동받아 또 울었다.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마음이 약했던 것 같다, 나는.
S선생님 집(절이기도 하지만)에 도착하니, 갑자기 가벼워 진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기 보단 나 혼자 멋대로 안심해버렸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문을 지나 돌이 깔려있는 좁은 길을 지나니 초로의 남성이 맞이해 줬다.
그러고 보니 S선생님 댁에는 항상 손님이 계셨던 것 같다.
분명 외학머니처럼 다니는 사람이 많은 거겠지.
안으로 안내되어 뒤쪽 현관에서 들어가니 다다미 10장 정도의 불간(불상이 안치되어있는 방)이 있었다.
S선생님은 내 기억대로 불상 앞에 깔린 방석 위에 정좌하고 있고, 천천히 뒤 돌아보셨다.
(어설픈 나가사키 사투리를 기억에 의지해서 적겠지만 눈감아주길)
(*본투비서울사람사투리고자번역주가 어설픈 사투리로 번역하겠지만 눈감아주길...´_`..)
외할머니「T야, 인자 다 괜찮다, S선생님이 봐 주실 끼다」
S선생님「오랜만이구나. 정말 훌륭하게 자랐구나. 세월 참 빠르네」
외할머니「S선생님, T는 어떻습니꺼?」
외할아버지「괜찮다니까. 글키 말혀도 인자 막 왔그만 S선생님이 잘도 아시겠소」
외할머니「아따 당신은 입 다물고 있으시오. 아주 내가 억수로 걱정이 되부려」
어째서일까… 그저 S선생님 앞에 온 것만으로 지금까지 당황하고 있던 조부모님이 진정되고 있었다.
그건 부모님께도 내게도 전해져 왔다. 깊게 숨을 내쉬니 몸에서 나쁜 것이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은 이제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이신 듯
「많이 지쳤지? 나중에 S선생님이 낫게 해주신단께, 옆방에서 좀 쉬다 오그라」
하는 상냥한 외할아버지의 말에 기대어 옆방으로.
S선생님「그럼 T, 이쪽으로 오렴」
S선생님께 불려 마주보고 정좌했다.
S선생님「그럼, 가족 분들과 I씨도 옆방에서 쉬고 계세요. T하고 이야기를 해야 돼서요.
뒤는 제게 맡기고, 이 방에는 괜찮다고 할 때까지 돌아오시면 안 됩니다」
외할아버지「S선생님, T를 잘 좀 부탁드립니다!」
외할머니「T야 걱정 붙들어 매라. S선생님이 잘 해주실 끼다
당신은 퍼뜩 선생님 말 좀 들으쇼?」
계속 S선생님께 부탁을 하고, 내게 말을 걸어주시는 조부모님의 모습에 또 눈물이 났다. 맨날 울기만 하네 나는.
S선생님이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무릎과 무릎을 마주 대는 것처럼 앉았다.
내 손을 잡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냥한 얼굴로 나를 보고 계셨다.
난 왠지 나쁜 짓을 해서 혼나는 게 아닌가 하고 부모님 안색을 살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눈앞에(감히 이렇게 쓰겠지만) 자신보다 작고 명백히 힘도 약한 할머니의
위압적이지도 아무렇지도 않은 분위기에 삼켜져 있었다.
그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S선생님「…어떡해야할까」
나「…」
S선생님「T야, 무섭니?」
나「…네」
S선생님「그렇겠지. 이대로 있을 수는 없겠지」
나「음…」
S선생님「아, 괜찮아. 이쪽 이야기니까」
뭐가 괜찮단 거야!? 눈곱만큼도 안 괜찮잖아! 하는 생각이 차올라 참을 수 없이 결국 있는대로 내뱉었다.
정말 나는 사람으로서 미숙하구나.
나「저기, 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제 빨리 어떻게 좀 해주세요.
도대체 뭐예요? 왜 그 녀석은 저한테 붙은 거예요? 이제 좀 그만해달라고 빌고 싶은 지경이에요.
S선생님, 어떻게 좀 안되나요?」
S선생님「T…」
나「애초에 저 그다지 나쁜 짓도 뭣도 안했거든요!?
확실히 □□(심령스팟)에는 갔지만, 나만 간 것도 아니고,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되는 거예요?
거울 앞에서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상관있나요? 진짜 이유를 모르겠네!! 악-! 열받아ー!!」
「어어~루루찌애서」(ドォ~ルルシッテ)
「어어~어어루루」 (ドォ~ドォルル)
「찌루에에서」 (チルシッテ)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정말 뭔지 모르겠어서 일단 그대로 적는다)
「어어~ 찌에서 어~찌애서」(ドォ~。 シッテドォ~シッテ)
왼쪽 귀에 앵무새나 잉꼬같은 날카로운 억양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어째에서」(ドーシテ)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자니 이해하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다.
나는 S선생님 눈을 보고 있었고, S선생님은 내 눈을 보고 있었다.
그저 따뜻하기만 했던 S선생님의 얼굴은 무표정해 보였다…
왼쪽 시야에는 뭔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흘끔흘끔 보이니까.
비키면 되는데, 왼쪽을 보고 말았다. 목에서 뜨뜻미지근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그 녀석이 서 있었다. 몸을 기역자(く)로 구부리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계속 하는 소리지만…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어나는 일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여긴 절인데 눈앞에는 S선생님이 있는데… 왜, 어째서, 어떻게…
일주일 전에 봤던 그대로였다. 그 녀석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올빼미같이 조금씩 얼굴을 움직이면서 나를 신기하다는 듯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째에서? 어째에서? 어째에서? 어째에서?」(ドォシッテ?ドォシッテ?ドォシッテ?ドォシッテ?)
앵무새 같은 소리로 계속 질문해 왔다.
분명… 하야시도 똑같이 이 속삭임을 들었던 거겠지. 나와 같은 말을 들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난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눈과 입을 크게 벌린 채로 있었다.
아니,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가끔 「프휴」하는 식으로 숨을 들이쉬는 걸 실패했던 것 같으니까.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는 사이에 그 녀석이 손을 움직였다.
얼굴에 붙어있는 부적 같은 것을 천천히 떼기 시작한 것이다.
보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고!!
이제 턱 주변이 보일 정도까지 와 버렸다.
마음속으로는 「그만둬! 더이상 떼지 마!!」하고 외치고 있는데도
입으로는「아…안ㄷㅗ…」같은 한심한 숨소리만 나왔다.
진짜 위험하다!! 위험해!! 위험해! 할쯤에 「짝!!」하고
비유라거나 과장이 아니라 “날아올랐다”. 심장이 파열되는 것 같았다.
「짝!!」
그 소리와 함께 나는 날아올랐다.
정좌를 하고 있어서 몸이 쓰러질 듯하며 뒤를 돌아보고, 바로 달려 나갔다.
뭔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 몸이 마음대로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정좌 때문에 발이 저려서 제대로 뛸 수가 없는 거야.
저려서 발이 꼬인 거랑 너무 앞을 안 봐서
머리부터 벽에 쳐 박았는데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렀는데도… 그 정도로 긴장해서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는 거겠지.
피가 눈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손을 막 휘두르며 출구를 찾았다. 하지만 빗나간 곳만 찾았던 것 같다.
「아직 안됩니다!」
갑자기 S선생님이 큰소리를 냈다.
장지문 건너에 있는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말한 건지 내게 말한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그 소리는 내 움직임을 멈추기엔 충분했다.
흠칫하고 그 자리에서 경직. 또 다시 속으로는 엄청나게 머리를 굴려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라곤 해도 파악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도 없고, S선생님이 하는 말에 따른 것뿐이지만.
내 움직임이 멈추고 불간에 들어오려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잠시 후 S선생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S선생님「T 미안해. 무서웠지. 이제 괜찮으니까 이쪽으로 돌아오렴.
I씨, 괜찮으니까 좀 더 기다려 주세요」
장지문(맹장지였을지도) 건너에서 끊임없이 뭐라고 말하는 것이 들려왔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피를 닦으면서 S선생님 앞에 돌아오니, 수건을 건네 주셨다. 향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냄새가 났었지.
이 쯤 되서 드디어, 그 소리는 S선생님이 손뼉을 친 소리라고 깨달았다. (질문할 여유는 없었지만)
「T, 보였지? 들렸니?」
「보였어요… 어째서? 라고 되풀이해서 말했어요」
이때는 이미 S선생님의 얼굴은 평소의 다정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나도 다음엔 천천히, 될 수 있는 한 침착하고 대답하는 것에 집중했다.
뭐… 생각하는 걸 그만뒀지만 말야.
「그렇지. 어째서? 라고 물었지. 뭐라고 생각해?」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
「??… 아니… 으음? …잘 모르겠어요」
「T는 아까 무서웠니?」
「무서웠…어요」
「뭐가 무서웠니?」
「아니… 그게 보통 있는 일도 아니고, 귀신이고…」
이쯤에서 내 머릿속은 사고능력의 한계를 넘었던 것 같다.
S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통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잖니?」
「아니… 목에서 피가 났고, 게다가 뭔가 부적 같은 걸 떼려고도 했고. 분명히 평범한 일은 아니고…」
「그러네. 그래도 그 이상은 없잖니」
「…」
「어렵구나」
「저기, 잘 모르겠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S선생님은 내가 이해하도록 말해주셨다. 깨달음을 주셨다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그 녀석은 귀신이나 요괴라고 불리는 것이 틀림없다.
그럼 소위 악령이라고 하는 녀석인가 하면, 그렇게 단언해도 될 지 S선생님은 잘 모르겠다는 듯 했다.
분명히 성질이 나쁜 부류에 들어가는 것 같지만, S선생님에겐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내게 일어난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악의는 없어도 너무 강하면 이렇게 돼 버리는 거야.
그 사람 항상 외로웠던 거겠지.
『말하고 싶어, 닿고 싶어, 봐 줬으면 해, 날 봐, 날 봐ー』라고 계속 생각했겠지.
T는 말이지, 잘 모를지도 모르지만 따뜻하단다.
많은 사람을 잘 챙겨주고, 그게 분명『좋다~ 상냥할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겠지.
그래서 자기를 봐 준 것이 너무 기뻤던 게 아닐까.
하지만 T는 그 사람하고 비교하면 지극히 약하단 말이지.
그러니까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져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거야」
S선생님은 마치 아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천천히, 어려운 단어는 쓰지 않고 이야기 해 주셨다.
난 어떡해야 할 지 헷갈렸다.
그 녀석은 분명히 악령이나 질이 나쁜 녀석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으니까.
S선생님에게 액막이를 받으면 그걸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S선생님이 그 녀석을 옹호하는 것처럼 말했으니까….
「자, 그럼 다음엔 어떻게든 해야겠네.
T,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어떻게든 해 줄게」
이 한 마디에는 정말 구원받았다. 아아, 이제 됐구나. 끝나는구나, 했어. 겨우 안심했었어.
S선생님에게 배운 것을 적겠습니다. 내게 있어 평생 잊고 싶지 않은 말입니다.
「보기에 무서워 보여도 스스로가 잘 모르는 존재라도, 스스로와 똑같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렴.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렴」
S선생님은 경을 외기 시작했다. 액막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녀석이 성불할 수 있도록.
그날 밤 이마는 찢어졌고, 자세히 보면 목의 흉터가 크게 찢어져서 아팠지만, 정말 푹 잠들었다.
(경이 끝난 후에도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웃으며 그 날은 묵게 해 주셨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것 같았지만 S선생님은 벌써 아침 기도를 끝낸 상태였다.
「잘 잤니? T, 세수하고 아침 먹고 오렴. 다 먹고 나면 본산(本山)에 갈 거야」
관계자도 무엇도 아니라 지나치게 쓰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조금만.
S선생님이 소속 되어 있는 종파는 전에도 적었듯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역사가 깊은데다
신자들도 수행자들도 일본 전국에 계시단말이지.
가르침은 똑같지만 지리적인 문제로 동과 서에 각각 본산이 있대.
내가 가게 된 곳이 서쪽 본산.
본산에 당분간 신세를 지며,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덕(지금도 어떤 건지 설명이 어렵지만)을 높이는 일과
그 녀석이 조금이라도 빨리 성불할 수 있도록 본산에서 공양해주기 위해서라고 S선생님은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가장 기뻐한 것이 외할머니. 아직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한 것이 아버지였다.
마지막은 내가 「이제 괜찮아요. 다녀올게요」라고 해서 반대하지 않았다.
본산에 도착하니 젊은 분이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S선생님께 정중히 인사했다.
본당 옆 깊숙이 자리 잡은 오두막(오두막이라고 하기가 꺼려질 정도로 크고 훌륭했지만)에서 본산에 계신 분들과 인사.
여기서도 S선생님에게는 다들 꽤 공손했지.
S선생님, 사실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듯해서 원하면 꽤 높은 지위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나중에 들었다.
(S선생님은「쓸쓸하지만 서열이 생겨버리잖니」라고 말했었다.)
나는 본산에 잠시 신세를 지고(뭐 손님 취급이긴 했지만) 다른 사람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
아마 S선생님이 미리 말해두어서겠지.
그러던 중에 내가 정말 행운아라고 실감했어.
벌써 40년간 계속 뱀 원령에 고통 받는 여성이나,
가족, 친척까지 지벌로 몰살당해서 친족이 없어졌지만
가계를 거슬로 올라가면 대단한 무사 가문의 후예였던 사람이라거나…
나 따위보다 훨씬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으니까….
엄격한 생활 속에 있어서인지, 장소가 그래서인지, 혹은 S선생님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공포는 상당히 옅어졌다. (고는 해도 문득 순간적으로 그 녀석이 옆에 와 있는 것 같아서 꽤나 떨었지만)
본산에 들어간 지 한 달이 흘렀을 때, S선생님이 오셨다.
「어머나, 많이 좋아진 것 같구나」
「네, S선생님 덕분이에요」
「그 뒤로 보이거나 했니?」
「아뇨… 한 번도. 아마 성불했거나 어디에 가버린 게 아닐까요? 여기 본산이니까」
「그런 일은 없단다?」
얼굴이 굳었다.
「어머, 미안해. 또 무서워진 거구나.
근데말야, T. 여기에는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많이 도와주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란다」
짐작이지만, S선생님의 말에는 그 녀석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T야, 좀 더 여기서 공부하렴. 모처럼이니까」
나는 S선생님의 말에 따랐다. 예전 일이 아직도 생각나서, 좀 더 여기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하루는 눈 깜짝할 새지만… 뭐라 할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좋기도 했어.
(좀 모순적인 것 같지만 말야)
그런 일이 계속되고, 결국 3개월이나 눌러앉아있었어.
그 사이에 S선생님은 이쪽엔 오시지 않았다. (두 달 전에 온 뒤로)
역시 S선생님의 말씀이 없으면 불안하단 말이지.
그런데 슬픈 일이지만
아무래도 3개월이나 지금까지 자기가 있던 떠들썩한 세계에서 격리되니까, 뭔가 허전하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어.
실로 두 달 만에 S선생님이 오셔서 드디어 본산에서의 생활은 끝을 맞으려고 하고 있었어.
복장을 갖추고 어찌됐건 신세를 진 모든 분들께 한 명 씩 인사를 드리고, S선생님과 돌아가려고 했어.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옆에 있어야 할 S선생님이 없었어.
어라? 하고 뒤를 돌아보니 조금 뒤에 계셨지.
너무 빨리 걸었나? 하며 돌아갔더니
다정한 얼굴로 「T, 돌아가지 말고 여기 있는 건 어떠니?」하고 물으셨어.
속으론 S선생님께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서 좀 기뻤다.
「아뇨, 전 여기계신 분들만큼은 못합니다.
정말 다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흉내 낼 엄두도 못내겠어요」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더니
「그게 아니라, 돌아가면 안될 것 같다는 거야」
「네?」
「그렇지만 아직 남아있으니까」
다시 얼굴이 굳어졌다.
결국 본산을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뒤로 두 달이 지났다. 정말 다섯 달이나 눌러 앉아버렸다.
아마 이렇게 길게 가족도 아닌 누군가에게 보살핌 받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S선생님으로부터 「아마 이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당분간은 한 달에 한 번은 들리렴」이라고 하셨다.
그 녀석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숨은 것인지 확실히 분간할 수 없어서인 것 같았다.
길었던 본산에서의 생활도 끝나고, 드디어 일상으로 돌아왔다.
빌렸던 아파트는 어머니가 방을 빼는 수속을 끝내주셔서 본가로 내 짐이 옮겨져 있었다.
아파트 방문을 열었을 때, 무언가를 그을린 듯한 냄새와 방 한가운데 바닥에 작은 벌레가 모여 있었다고 한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그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갔다고.
다음 날 할 수 없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방문을 열었더니, 냄새는 남아있었지만 벌레는 없었다는 듯.
어머니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내가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본가로 돌아와서, 정말 반년 만에 핸드폰을 보니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군)
엄청난 건수의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았던 게 ○○.
문자로 녀석은 녀석대로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자책하는 마음이 있었던 듯,
사죄라거나 이렇게 하면 좋다거나 이런 사람을 찾았다거나 착실히 연락을 하고 있었다.
엄마에게서 ○○가 집까지 온 일도 들었다.
돌아온 지 둘째 날 밤, ○○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너편이 시끄럽다. ○○는 혀가 꼬여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미팅이나 하고 있고.
어쨌든 전화를 끊고, 『너 죽는다』하고 문자를 보내 놨다.
어차피 세상에 남은 결국 남인 거다.
다음 날 ○○에게서 『사과하고 싶으니까 시간 좀 내줄래?』하고 문자가 왔다.
전화가 아니었던 건 어색해서겠지.
밤이 되자 집까지 ○○가 찾아왔다.
일부러 먼 곳까지 찾아 올 정도다. 상당히 반성과 후회를 하고 있는 거겠지.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내가 싫어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현관을 열고 ○○를 보자마자 두 방 먹였다.
한 방은 녀석이 자책하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 방은 미팅 따위에 나가서 날 짜증나게 만든 일에 대한 벌이었다.
말로 용서받기보다도 맞는 편이 후련한 경우도 있으니까. 뭐 두 번째는 내 개인적인 분노지만.
○○에게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그날 밤은 둘이서 흥분하고 무서워하고…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상이다.
○○에게서는 예전 그 때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밤, 도망쳤을 때 하야시는 분명히 이상해져있었다.
하야시의 자동차 안에서 친구와 기다리고 있던 ○○는 일단 틀림없이 큰일이 일어난 거라고 바로 알아챘다고 한다.
하지만 뒷좌석으로 뛰어올라 탄 하야시가 정상이 아니게 초조해 해서, 차를 출발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반항하거나 장난치면 무슨짓을 당할 것 같았어」
○○의 말이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는 차가 우리 집에서 멀어져 고속도로 입구 근처 신호에 걸렸을 때,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그치만 그 사람, 도중에 갑자기 웃거나 부들부들 떨면서
『나는 아냐』라거나 『그런 짓 안합니다』같은 소릴 해대서 무서웠다고」
그 녀석이 뭔가 속삭이는 모습이 떠올라서 머릿속 영상을 지우느라 고생했다.
우리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은 단순히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근성이 없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으니까 용서했다. 내가 ○○였어도 그럴 것 같고.
그 뒤로 하야시가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역시 이 일은 ○○도 단단히 화가 난 듯, 하야시를 소개한 친구에게 따졌다는 것 같다.
결국 하야시는 사기꾼 흉내도 못 내는 구제하기 힘든 녀석이라는 듯해서
부추겨서 가벼운 생각으로(용돈벌이라거나…) 소개했다고.
○○가 말하길, 「제대로 두들겨 패 놨으니까 좀 봐줘!」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게 자신의 정보였다는 것은 좀 반성하듯,
이번엔 될 수 있는 한 모든 인맥을 총동원 했지만…
이런 일에 관심을 갖거나,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은 주변에 있을 리가 없고,
아마 라거나 ~겠지, 하는 수준의 정보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언가 조건이 몇 개 있어서, 우연히 갖추어지면 일어나는 게 아닌가』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뒤로 난 S선생님의 지시를 잘 지켜서 매달 한 번씩 S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처음 일 년은 매달, 다른 1년은 세 달에 한 번.
○○도 내게 사죄하는 의미에서인지 아무 일 없어도 집까지 오는 일이 늘었고,
S선생님 댁에 가기 전과 돌아온 후에는 항상 연락이 왔다.
그 녀석을 본 지 2년이 흘렀을 때, S선생님으로부터
「이제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네. T야 앞으로는 가끔 오면 돼. 하지만 이상한 짓 하면 안 돼」
라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 끝난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S선생님은 3개월 뒤 타계하셨다.
경애하는 S선생님,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었다.
그저 지금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싶다.
S선생님의 장례식으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쓸쓸함과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도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난 일상으로 돌아왔다.
분주한 나날들 사이에 문득 그 시절을 떠올릴 때가 있다.
너무 일상에서 떨어져 있어서 정말 있었던 일인지 분간이 안 갈 때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 수도 없고, 또 할 필요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할머니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온 것은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낼 때 였다.
봉투를 자르니 할머니에게서 온 편지와 또 하나의 편지가 와 있었다.
할머니의 편지에는 내게 하는 말과 함께 이렇게 쓰여 있다.
『S선생님에게 받았던 편지다.
49일도 끝났으므로 S선생님과의 약속대로 T에게 보낸다』
S선생님의 편지.
이제 와서는 거기에 쓰여 있는 말의 진위 여부도 확인할 수 없고,
그대로 쓰는 건 좀 꺼려지므로 적당히 쓰겠다.
T에게
오래만이예요. S선생님입니다. 그 뒤로 시간이 꽤 흘렀네.
이제 괜찮니? 무서운 일 없었다면 좋을 텐데…
안되겠다, 나이가 들면 말을 빙빙 돌려하게 되네.
오늘은 말이지 T에게 사과하고 싶어서 편지를 쓰고 있어.
그래도 안 좋은 일을 한 건 아니야. 그 때는 어쩔 수 없었어. 그래도… 미안해.
그 날 T가 우리 집에 온 날, 선생님 사실은 너무 무서웠어.
왜냐하면 T가 데려온 것은 아무리해도 선생님 힘에는 부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T가 겁내고 있었잖아? 그래서 선생님이 무서워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사실을 말하자면 아무리 손을 뻗어 봐도 돌아보지도 않는 것도 있어. 그 때는 운이 좋았지.
T야, 본산에서의 생활 어땠니? 조금 나쁜 생각은 떨쳐졌니?
T하고 만날 때 마다 선생님이 아직 안된다고 했었지? 기억하니?
이대로 돌아가면 큰일날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T처럼 젊은 애는 지루할거란 걸 알고 있었어도 돌아가게 하지 않았던 거야.
선생님은 매일 기도했지만, 좀처럼 어딘가로 가 주질 않아서.
하지만 이제 괜찮을 거야. 근처에 없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T, 만약…혹시라도 또 힘든 일이 생기면 바로 본산으로 오렴.
거기라면 아마 T가 더 강해질 수 있으니까 쉽사리 손을 댈 수 없을 거야.
S선생님의 편지 뒷부분
마지막으로 말이지, 제대로 알려줘야 할 게 있어.
너무 힘들면 부처님께 몸을 맡기렴.
이젠 힘든 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여겨지면, 결단을 내리렴.
절대 T를 죽이려는 게 아니야.
하지만 만약 아직 끝나지 않은 거라면, T에게는 무척 힘든 시기가 계속될 거라는 거야.
T도 본산에서 몇 명이나 만났지?
정말 질 나쁜 것들은 말야,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괴롭혀. 절대 끝내지 않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빙긋 웃고 있겠지.
분하지만 선생님들의 힘이 충분치 않아서 눈앞에서 괴로워하고 있어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을 때도 있어.
그 사람들도 도와주고 싶은데… 손도 댈 수 없는 일이 많아서…
선생님은 어떻게든 T만은 도와주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봤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어.
기척도 안 느껴지고, 없어졌다고도 생각되지만, 아직 안심하면 안 돼.
안심하고 긴장을 푸는 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알겠니? T, 절대 방심해선 안 돼.
항상 주의하고 의심스러운 곳은 가지 말고,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하렴.
선생님을 믿어줘. 알았지?
거짓말만 해서 미안해.
믿어달라고 하는 게 너무 뻔뻔하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마지막까지 부처님께 기도드렸다는 건 믿어줘.
T가 매일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항상 기원하고 있단다.
S
읽으면서 편지를 들고 있던 손이 떨려오는 게 느껴진다.
기분 나쁜 땀을 흐른다. 심장박동이 계속 빨라진다.
대체 어떡하면 좋지?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갑자기 그 녀석이 어딘가에서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도망갈 수 없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냥 숨기만 한 거고, 언제라도 내 눈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게 아닐까?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진다.
S선생님은 어쩌면 그 녀석에게 시달렸던 건 아닐까?
그래서 이런 편지를 남기신 게 아닐까?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게 아닐까?
어쩌면 하야시에게 그 녀석이 붙어버린 건 아닐까?
대체 그 녀석에게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나와는 달리 좀 더 직접적인 말을 들어서…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
S선생님은 날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해 주셨지만
『거짓말을 해야 할 정도』의 일이 있었던 걸까….
결국 그걸 아니까 S선생님은 마지막까지 걱정했던 게 아닐까?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혼란스러워졌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전혀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전부이다.
이년 반에 걸쳐 지금까지도 끝난 건지 어쩐지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의 전부이다.
결국 이유도 모르겠고, 순조롭게 해결되거나 실마리를 잡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어디서 얻었는지 확실하지 않은 지식이 부른 것일까.
혹은 그게 무언가의 인과관계에 있었던 걸까….
내겐 전혀 이해되지 않고, 우연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우연치고는 너무 무섭다.
과연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 해야 하는 죄를 지었던 걸까? 짓지 않았잖아?
그렇다면…왜지? 너무 불공평하잖아.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뿐이다.
「무언가에게 홀리거나 노려지거나 달라붙어진다면, 진짜 두려운 것을 다시 새삼 말해 둔다.
마지막까지 누가 끝났다고 한다 해도 방심하면 안 된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미안하지만, 난 사과해야 할 게 있다.
이 이야기 안에는 작은 거짓말이 몇 개나 있다.
이건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거나, 내가 잘 모르는 게 있어서니까 그냥 넘어가 주길 바란다.
때문에 뜻을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 또한 사과하고 싶다.
다만… 진짜 사과해야 하는 부분은 그게 아니다.
좀 더 이 이야기가 성립하는데 있어 근본적인 부분에서 난 거짓말을 하고 있다.
눈치 못 챘을 거라 생각하고, 눈치 채지 못하게 신경을 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으니까.
모순을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다. 실망할 지도 몰라…
하지만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다.
난 ○○야.
…지금에 와선 죽도록 후회하고 있다
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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