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미스터리 범죄들 지난 2005년의 일이다. 할리우드의 ‘은막의 전설적인 여성(legendary lady of screen)’ 라나 터너(Lana Turner, 1925~1995)의 일대기를 주제로 한 전기영화에 캐서린 제타 존스가 ‘라나 터너’ 역으로 캐스팅되자 샤론 스톤이 이를 비난하고 나섰다.
“은막의 전설적인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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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나 터너는 관능적인 연기로 1960년대 할리우드의 은막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 “할리우드에서 라나 터너 역을 소화할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다. 나는 악녀(惡女)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라나 터너 역을 완벽히 소화할 적임자는 바로 나다.”
스톤은 모 영화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생전의 터너와의 친밀한 관계를 들먹이며 “나는 터너가 죽는 해에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배우인 사람이고 나는 그녀를 매우 좋아했다. 우리는 너무나 잘 맞았다”는 말을 털어 놓기도 했다.
그녀는 또 “당시 터너는 만약 앞으로 자신을 주제로 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내가 그녀의 역할을 하길 희망했다”며 “터너의 삶은 할리우드의 그 어떤 것보다 흥미롭고 나 역시 그 역할을 하고 싶고, 적임자”라며 고양이 발톱을 세웠다.
1950~1960년대 뇌쇄적인 매력을 지닌 스타 라나 터너는 영화 <우편배달부는 두 번 벨을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를 비롯해 <공포의 시바>, <마담X >, <사랑이 머무르는 계절>, <슬픔은 그대 가슴에> 등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그야말로 은막의 전설적인 여배우로 할리우드를 주름잡았다.
1995년 암으로 죽기 전까지 60편 이상에 출연했으며 무려 8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하면서 떠들썩한 사생활로도 유명했다.
<우편배달부는 두 번 벨을 울린다>의 주인공
특히 <우편배달부…>는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대공황기의 미국 소도시를 배경으로 추악한 욕망들이 빚어낸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1947년에 만들어진 작품을 다시 재구성한 작품인데 원작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섹스, 그리고 야수와도 같은 폭력성의 묘사가 일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다소 퇴폐적이고 외설적이지만 다른 에로 영화에 비해 스토리 전개가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자신의 불륜의 관계 때문에 남편을 살해하려는 여인 제시카 랭(라나 터너 역)을 중심으로 대공황 시기 미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반영했다.
국내에서 개봉됐을 때 외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이 영화는 특히 제목에 붙은 ‘우편배달부’라는 단어 때문에 집배원들의 집중 항의로 ‘포스트맨’으로 바꾼 재미 있는 일화가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또 당시만 해도 대학가에는 대학생들의 집회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사복 경찰들이 상주하던 시대였다. 대학가에서는 이런 상황을 비꼬아서 ‘폴리스맨은 무전기를 두 번 두드린다’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라나 터너의 장점은 무엇보다 관능적인 몸매였다. 이미 ‘스웨터 걸(sweater girl, 가슴 불룩한 처녀)’이라는 별명으로 이러한 영화 시리즈에서 주연을 맡았던 할리우드 최고의 미녀 배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병사들에게 가장 인기를 끈 여배우였다.
섹스 심벌로 브리짓 바르도, 마릴린 먼로 등과 같이 대표적인 핀업 걸(pin-up girl)이었다. 미군들의 사물함에는 어김 없이 그녀의 관능적인 몸매를 담은 사진이 붙여 있었다.
영화 속의 배역, 그녀의 인생역정과 닮아
남편을 살인하는 간부(姦婦) 역을 맡은 <포스트맨…>에서 뿐만 아니라 알코올 중독에 걸린 여배우 역<악인과 미인>, 그리고 신경과민의 어머니 역을 맡은 <페이턴 플레이스 Peyton Place>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터너가 맡았던 배역 역시 그녀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그대로 반영됐다.
할리우드를 빛낸 수많은 여배우들 가운데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마약, 알코올, 이혼 등으로 씁쓸하게 은막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많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파란만장하게 기구한 삶을 산 여배우라면 단연 라나 터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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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나 터너가 정작 무대에 오른 것은 <포스트맨은 두 번 벨을 울린다>에서 불륜을 저지른 남자를 위해 남편을 살해하는 연기에서다. | 그녀의 본명은 밀드레드 터너(Julia Jean Mildred Frances Turner). 아버지는 광부였다. 어머니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터너를 낳았다. 아버지는 웬만큼 돈을 벌었지만 놀음에 빠져 집안은 늘 가난에 허덕였다.
터너가 6살이 되던 1930년, 아버지가 오랜만에 주사위 게임(craps game) 도박판에서 돈을 좀 땄다. 돈을 왼쪽 양말 속에 쑤셔 넣고는 오랜만에 가족들에게 으스대기 위해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들길 한 모퉁이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놀음판에서 딴 돈을 쑤셔 놓은 그의 왼쪽 양말과 신발은 없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돈을 훔쳐간 범인은 끝내 밝혀내지 못한 채 미궁의 사건으로 종결됐다.
아버지는 노름꾼들에게 살해돼
아버지가 죽던 해 어머니와 터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다. 의사가 좀더 건조한 기후가 좋다고 충고했기 때문이다. 터너는 원래 목이 자주 아팠다. 훗날 그녀는 인후암(throat cancer)으로 세상을 뜨는데, 그 징후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듯하다.
로스앤젤레스의 생활은 고달픈 하루의 연속이었다. 대공황기가 생활을 여간 핍박한 게 아니었다. 어린 터너는 어머니와 한동안 혼자 떨어져 지낼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미용사였다. 머리손질은 물론 손님이 원하면 화장을 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어머니는 훗날 터너의 할리우드 전속 매니저(overseer)로 일하게 된다.
가난한 터너가 할리우드에 스카우트된 평범하지 않은 일은 하나의 전설로 통한다. 당시 16살의 금발머리 소녀 터너는 할리우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지겨운 타이핑 수업시간을 빼먹고서는 거리 공원으로 나와 콜라를 사서 홀짝홀짝 맛있게 들이키고 있었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할리우드 리포터(Hollywood Reporter)>라는 당시 가장 유력한 할리우드 영화잡지 발행인 윌리엄 윌커슨(William Wilkerson)의 눈에 띄게 된다. 윌커슨은 터너의 미모, 그리고 특히 글래머 스타일의 몸매를 보고 앞으로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업 빼먹고 콜라 마시다가 스카우트 돼
윌커슨은 배우, 코미디언, 탤런트를 관리하는 제포 막스(Zeppo Marx) 에이전시에 소개했다. 흡족하게 생각한 이 에이전시는 터너와 즉시 전속계약을 체결하고는 그녀를 영화감독인 머빈 릴로이(Mervin Leroy)에게 소개했다. 그야말로 일순간에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17세의 나이에 <그들은 잊지 않을 거야(They Won’t Forget, 1937)>로 영화에 데뷔한 후, <지그펠드 극장의 소녀(Ziegfeld Girl,1941)>에서는 쇼걸로 출연했다. 이때부터 언론매체들은 그녀의 고혹적이고 확 튀는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2편의 영화 <싸구려 카바레(Honky Tonk, 1941)>, <어디에서인가 너를 찾아낼 거야(Somewhere I’ll Find You, 1942)> 등에서는 당시 할리우드의 왕자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클라크 게이블의 상대역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조니의 열망(Johnny Eager, 1942)>에서는 갱 단원의 정부(情婦) 역을 잘 소화해 배우로써 자질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고혹적인 성적 매력이 가장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역시 <포스트맨은…>에서였다. 당시 나이 겨우 22세였다.
일곱 명의 남자와 여덟 번의 결혼
그녀의 화려한 인생이 시작됐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남자와 사랑을 즐겼다. 그러나 사생활은 비극 자체였다.
일곱 명의 남자와 여덟 번의 결혼을 하는 등 평안할 날이 없었다. 음악가이자 밴드 리더인 첫 남편 아티 쇼우(Artie Shaw)와 사랑에 빠진 것은 19살 때였다. 그녀는 이 남자와 헤어지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풋사랑’이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남편은 커다란 식당을 운영하는 조셉 크레인(Josef Stephen Crane)이었다. 당시 터너는 전남편 쇼유와 법적으로 이혼정리가 안 돼 있어 법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그러나 결국 결혼에 성공해 유일한 딸 셰릴 크레인(Cheryl Crane)을 얻게 된다. 세기의 미스터리 범죄들의 주인공이다.
백만장자였던 헨리 토핑(Henry J. Topping)은 다이아몬드로 그년의 환심을 사 결혼한다. 그러나 투자 실패와 도박으로 재정이 파탄이 나자 이혼도장을 찍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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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너는 8번 결혼에서 딸 한 명을 얻었다. 그녀는 터너의 남자친구를 칼로 찔러 죽인 미스터리 범죄 주인공이 된다. | 다시 영화 <타잔>의 히어로 렉스 바커(Lex Barker)와 결혼했지만 다시 이혼했다. 이유는 바커가 딸 체릴을 성희롱과 강간을 했다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만나 결혼한 사람은 나이트클럽에서 화려한 무대를 연출하는 최면술사 로날드 펠라(Ronald Pellar)였다.
그러나 펠라는 결혼하지 6개월도 안돼서 집을 나가버렸다. 터너가 사업을 해보라며 3만5000달러를 주었는데 사업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돈을 갖고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었다. 훗날 터너는 이 ‘불한당 같은 놈’이 10만 달러에 이르는 보석을 훔쳤다고 고소했다.
결국 마피아 깡패와 만나
할리우드의 은막의 여왕 라나 터너의 사생활은 이처럼 엉망이었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마피아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폭력배 조니 스탐파나토(Johny Stompanato)의 잘 생긴 외모와 용감무쌍한 기질에 반했다.
세기의 미스터리 범죄는 이렇게 시작됐다. 왜냐하면 스탐파나토가 터너의 집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딸 체릴 크레인 이 찌른 식칼에 의해…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