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무서

기묘한이야기

김황도 2011. 12. 18. 02:49

죽고 싶다…….

사업실패로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죽기 전에 부모님이라도 미리 뵙고 싶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성묘 갔다.

그 날은 비도 오지 않았는데,
비석 앞에 물기가 가득했다.

명절도 아닌데 누가 왔다 갔나.
어라, 비석을 잘 보니 물로 '살아라(生)'라고 써져 있었다.

죽지 않기로 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 남자에게 낯선 신사가 상자를 들고 왔다.
상자에는 버튼 하나만 있고 아무 것도 없었다.
신사는 온화한 어조로 남자에게 말했다.

"당신이 이 버튼을 누르면,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당신이 모르는 사람이 죽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100만 달러를 현금으로 드리겠습니다."

신사는 가방을 열어 안에 담긴 돈뭉치를 보여 주었다.
남자가 주저하자, 신사는 상자를 주며 3일 후에 다시 찾아오겠다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남자는 한참 고민했지만, 결국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니 괜찮겠다 싶어 마지막 날에 버튼을 눌렀다.

다음 날, 신사가 나타나 남자에게 100만 달러가 주고 상자를 회수했다.
신사가 인사하며 떠나려고 할 때, 남자는 물었다.

"정말로 사람이 죽었습니까?"
"네. 확실히 당신이 누른 시각에 죽었습니다."

남자는 양심에 찔렸지만 눈앞의 돈뭉치를 보고 자신을 납득시켰다.

"하나 만 더 물어도 되나요?"
"네."
"그럼 그 상자는 어떻게 되죠?"

그러자 신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당신을 모르는 사람에게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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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만우절.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우리들은 내 방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매일 마시는 술이라 감흥이 없었다.
지루했던 우리들은 게임을 생각해냈다.

거짓말 게임.

모두들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시시한 게임이다.
그렇지만 그 시시함이 좋았다.
무엇보다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처음은 나.
저번에 만난 여자가 임신해서 지금은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알았지만 거짓말해보라고 멍석을 깔아주면 의외로 100% 거짓말 할 수 없다.

나의 경우, 당시 그녀는 임신했었지만, 아버지는 되지 않았다.

누가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 좀처럼 간파할 수 없었다.
간파할 수 없어서 즐거웠다.

어느새 마지막이다.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들처럼 조리 있게 거짓말을 못하니까 지어낸 이야기를 할게."

이윽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2.
(녀석의 이야기)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아무 것도 없는 흰 방에 있었어.
왜 거기에 있는지, 어떻게 거기까지 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

갑자기 천정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낡은 스피커인걸까? 노이즈가 섞인 이상한 소리였어.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진행되는 일은 인생이며 인간의 업을 걷는 길. 넌 고민과 선택만을 할 수 있다. 결코 모순되지 않게 선택하라."

문득 뒤돌아보니 문이 하나 있었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른쪽엔 텔레비전이, 왼쪽에 침낭이 있었어.
침낭 안에는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이윽고 소리가 들렸어.

하나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1. 오른쪽에 있는 텔레비전을 망가뜨리는 것.
2. 읜쪽에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
3. 당신이 죽는 것.

1을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당신과 왼쪽에 있는 사람은 자유로워지지만 대신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죽습니다.

2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대신 왼쪽에 있는 사람은 현실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3을 선택하면 왼쪽에 있는 사람이 자유로워집니다.
대신 당신은 이제 현실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용서받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 방의 분위기는 정말 이상했어.
지시대로 하지 않으면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생각했어.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죽고 싶지 않았어.
하나의 생명인가. 많은 생명인가?
그런 건 비교할 것도 없었어.

침낭 옆에 보니 파이프가 있었어.
나는 조용히 파이프를 들어 침낭을 향해 내려쳤어.
묵직한 소리가, 감각이 전해졌어.
하지만 문을 열리지 않았어. 다시 한 번 침낭을 향해 내려쳤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익명성이 죄책감을 마비시킨 걸까.

이윽고 문이 열렸어.
침낭 안에 사람은 죽은 걸까.

3.
다음 방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오른쪽에 여객선 모형이, 왼쪽에는 역시 침낭이 있었어.
다시 소리가 들렸어.

하나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1. 오른쪽에 있는 여객선을 망가뜨리는 것.
2. 읜쪽에 있는 침낭을 태우는 것.
3. 당신이 죽는 것.

1을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당신과 왼쪽에 있는 사람은 자유로워지지만 대신 여객선에 있는 사람들이 죽습니다.

2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대신 왼쪽에 있는 사람은 현실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3을 선택하면 왼쪽에 있는 사람이 자유로워집니다.
대신 당신은 이제 현실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여객선은 단순한 모형이었어.
이걸 부순다고 사람이 죽을 것 같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행동으로 봐선 믿지 않을 수도 없었지.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했어.

침낭 옆을 보니 석유와 성냥이 있어.
침낭을 향해 석유를 뿌리고 성냥으로 불을 가했어.
침낭은 금새 불길에 휩싸였어.

삼분 정도 지났을까?
시간 감각은 없었지만 사람이 죽는 시간일 테니 그 정도였을 거야.
드디어 문이 열렸어.

4.
다음 방에 가자, 이번엔 오른쪽에 지구본이, 왼쪽에는 또 침낭이 있었어.
또 다시 소리가 들렸어.

하나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1. 오른쪽에 있는 지구본을 망가뜨리는 것.
2. 읜쪽에 있는 침낭을 쏘는 것.
3. 당신이 죽는 것.

1을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당신과 왼쪽에 있는 사람은 자유로워지지만 대신 세계 어딘가에 핵이 떨어집니다.

2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대신 왼쪽에 있는 사람은 현실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3을 선택하면 왼쪽에 있는 사람이 자유로워집니다.
대신 당신은 이제 현실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이제 사고나 감정은 완전하게 마비되어 가고 있었어.
나는 반기계적으로 침낭 옆에 놓인 권총을 주워 바로 쐈어.
탕. 탕. 탕. 탕. 탕. 탕.

회전식 권총으로 6발 모두 비웠어.
처음으로 총을 쐈지만 편의점에서 물건 사는 것보다 쉬웠지.
고개를 돌리자 이미 문은 열려 있었어.

5.
다음 방은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왠지 여기가 출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어.
이제 나갈 수 있겠지.
그러자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선택입니다.
3명의 인간과 그들을 제외한 전 세계의 인간. 그리고 당신.
죽인다면 무엇을 선택할겁니까?

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지금까지 행한 일을 가리켰어.
그러자 다시 소리가 들렸어.

축하합니다.
당신은 모순없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이며, 익명의 행복 뒤에는 익명의 불행이 있고, 익명의 생명 뒤에는 익명의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걸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생명의 무게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생명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
문은 열렸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나는 안도감에 휘청휘청 거리며 마지막 문을 열었어.
빛이 쏟아지는 눈부신 방.
이제 나갈 수 있겠구나!
그런데 뭔가 보였어.

세 개의 영정이 있었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의 영정이.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이야.

6.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들은 침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모두들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맥주를 벌컥 마시고 그에게 말했다.

"기분 나쁜 이야기는 그만둬! 다른 사람처럼 거짓말해봐!"

그러자 녀석은 형용할 수 없는 기분 나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어.

"이제 시작할게."
"응?"

"이제 지어낸 이야기를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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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한 달 전부터 매일 같은 꿈을 꾼다고 토로했다.

"한밤 중에 문득 일어나면, 천정에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는데,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넌 이제 충분히 살았지? 이제 바꿀 때야.' 라고."

남편은 매일 아침인사처럼 아내에게 상담하고 했기에 아내도 점점 걱정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그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내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꿈 안 꿨어?' 라고 물으니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무슨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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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인천에 사는 저는 학교가 수원에 있어서 전철을 타거나, 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학교를 왕복 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없어지고 없지만 인천 용현동의 구 터미널이 집과 도보로 15분 거리였기에 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가서 국철을 타고 서울까지 가서 다시 1호선으로 수원까지 가야하는 총 한번 가는데 3시간 정도 걸리는 긴 전철 구간보다는 1시간에서 1시간 20분 정도면 가는 직행버스가 비싸도 점점 애용 빈도가 잦아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항상 늦었습니다.
전공 작업 때문에 늘 막차를 타고 돌아오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벼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쌀쌀한 밤이었습니다.
그날도 막차를 타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창문에 기대어 자고 있는데, "끼이이이이이익! 쾅!" 하는 큰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에 놀라 주변을 살펴보았는데
버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달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도 제각기 너무 잘 자고 있는 고요한 버스 안에서 저는 잠결에 들은 그 소리가 너무 선명하여 한동안 놀란 심장을 달래야했습니다.

마치 저만 들은 거 같은 이질감에 다음날 신문과 뉴스를 기다려 봤지만 도로에서의 사고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역시 음산하게 비가 오는 밤이었습니다.
같은 시간 막차에 인천으로 가고 있는데, 잠깐 꾸벅꾸벅 졸았을까…….

"끼이이이이이익! 쾅!"

굉장히 큰 소리여서 "으앗!" 이라는 비명까지 질렀지만
버스와 거리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그 뒤 비가 오는 밤의 막차에 타면
어김없이 그 굉음에 잠에서 깼습니다.
여러 차례 반복되자 저는 소리가 나는 지점이 항상 같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소름이 돋아서 비오는 날은
전철을 타고 갈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한동안 좋은 날씨가 계속 되다, 예고치 못한 비를 만났습니다.
우산도 가져오지 않았기에 저는 당연히 직행버스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막차로 말이죠.

버스를 타면 버스 진동이라는 것이 참 자장가 같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피곤했지만 웬일인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가슴이 조마조마한 예감에 말이죠.

그렇게 한참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쾅" 하고 소리가 났습니다.
"끼이이이이이익- 쾅!"

소리와 동시에 저는 고개를 번쩍 들어 창밖을 봤습니다.
전과 같은 자리가 확실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전에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봤습니다.

<사고다발지역>

눈앞에 <사고다발지역>이라는 표지판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고 다발지역? 여기가? 하고 놀라하는데,
갑자기 앞좌석의 남자가 화들짝 놀라 주변을 마구 살폈습니다.

"뭐, 뭐야. 사고난거야?"
저만 들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남자는 자기 외에 들은 사람이 없는 거 같아 당황했습니다.
그 모습은 제가 그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저보다는 용감했는지 사람들에게 사고 소리 들었냐, 소리 엄청 크던데 정말 대형사고 난거냐며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물론 그것에 제대로 답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전 용기를 내서 그 남자에게 나도 들었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버스는 종점에 도착했고 모두들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앞에 앉았던 그 남자가 자연스럽게 제 앞에 서게 되었는데
버스 기사아저씨가 뒤늦게 내리는 그 남자를 손짓으로 잡고는 이러는 겁니다.

"아까 승객들이 불안해 할까봐 말 안했는데, 그 자리에서 사고 소리 듣는 사람들이 종종 있죠. 꼭 그 자리에서 소리를 듣고 놀라더라고."

역시 저 혼자 들은 환청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것처럼 비오는 날 저녁 인천행 버스 막차 승객들 중 잠결에 그 소리를 듣고 놀라는 사람이 꽤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사고 다발 지역을 지날때마다.

제가 들은 그 소리는 분명 운전자나 그 차의 탑승자는 사망했을 정도로 굉장히 큰 굉음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그 곳에서 정말 그만큼 큰 사고가 났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운전사아저씨 말씀대로 저와 제 앞좌석의 남자는 그 소리를 동시에 들었고 저는 그 자리에서 그것도 비오는 날 막차를 타면 어김없이 그 굉음을 들었습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저는 여전히 그 엄청난 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찾아오던 오싹한 공포도.

어쩌면 사고가 난 차는 아직도 비오는 날마다 사고를 되풀이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단지 우리에겐 소리만 들릴 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방이 두 개인데,
큰 방에선 저와 어머니가 자고
작은 방에선 언니가 자곤 했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자 큰 방이 너무 더워서
바람이 잘 들어오는 작은 방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작은 방에서 자던 언니는 거실에서 자기로 하고요.

그런데 작은 방에는 침대가 없어서
큰 방에 있는 침대를 옮겨야 했습니다.

여자 셋이서 큰 침대를 옮기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침대를 옮기고 나니 온 몸이 피곤했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자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떠졌습니다.
등 뒤에서 한기가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께서 등을 돌린 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저는 벽을 보고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뒤로 보이는 부엌에 누군가 서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언니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언니가 아닌 낯선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은 공중에 떠있었습니다.
이윽고 천천히 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서워져서 엄마를 불렀는데
엄마는 깨어나지 않았고 저는 공포에 질려
눈을 질끈 감으며 엄마를 안았습니다.

몇초 후 눈을 뜨자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다행이다 그렇게 안심한 순간,
제가 안은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아닌 긴 머리의 여자를 안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바뀌어 버린 걸까요?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겁에 질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제가 뒤에서 안은 여자가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긴 머리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는데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였습니다.

게다가 영화 <엑소시스트>처럼 목만 돌아가 절 바라봤습니다!
이윽고 여자는 절 보고 씩- 웃었고 뭔가 말하려는 순간,
엄마가 저를 깨우셨습니다.
저는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고
그대로 엄마에게 안겨 울며 잠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을 엄마와 언니한테 이야기했는데
언니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며 숟가락을 떨어뜨렸습니다.

"어제, 엄마 작은 방에서 안 잤는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작년 겨울까지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린 사람 때문에
스스로 '헤어졌다'는 걸 직감하고 울기도 참 많이 울어서
전화번호도 지워버렸습니다.

하지만 문자 하나만은 너무 아쉬워서 지우지를 못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군대에 가는 중학교 동창 녀석 송별회랍시고 모인 술자리에서
제가 술 마시던걸 탐탁치 않아했던 그 사람이 생각나 괜히 우울해졌습니다.

"그렇게 못 잊겠으면 술 핑계 대고 전화 한 번 해봐."

라는 친구의 말에 저장되어있던 문자 메시지 함을 열어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잠깐의 신호 후 전화를 받은 그 사람.
여전한 목소리에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져 전화를 끊었는데,
한참 후에 그 사람의 번호로 <보고 싶다> 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날 잊지 않았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술이 확 깼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문자를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거는 사이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없는 번호라니.

의아한 마음에 몇 번씩 다시 걸어봤지만
없는 번호라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고.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전화번호를 바꿨다고 들은 것 같아 오싹해져야 했겠지만,
오랜만에 들은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는 게 서러워서 엉엉 울었습니다.

며칠 뒤.
우연히 그 사람과 자주 어울렸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oo가 수요일 새벽에 교통사고로 죽은 소식 들었어요? 말 안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그 녀석이 **씨 많이 보고 싶어 해서……."

수요일 새벽.
그 사람에게서 <보고 싶다>라는 문자가 온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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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이야기